Finding Alize – Chapter 1 – Ep1 (Pt4)

Story by Oldboy101 | Written with the help of ChatGPT

고요한 골목 위로 안테나가 돌아가는 낮은 소리가 번졌다.

세워진 세 대의 차량 중 하나,
도시 건물 점검 차량으로 위장한 유틸리티 밴 위에서 디시가 천천히 돌아가며 
고시원 건물을 향해 각도를 맞췄다.

차량 내부.

HUD에 새로운 항목이 떠올랐다.

GHOST GATE INITIALIZING
화면 하단의 얇은 진행 바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유리 너머 고시원 출입구를 바라보며
성준은 AR 글래스를 낀 채 조용히 통신을 이어가고 있었다.

성준  
셀룰러 쪽은 특이사항 없다고요?

성준의 시선이 고시원 주위를 한번 훑었다.

성준  
알겠습니다.  
네, 이쪽도 아직 이상 없습니다.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도 없고… 조용합니다.

상현  
시간 좀 걸리겠네요.

태블릿과 HUD를 번갈아 확인하던 상현은 형광 조끼를 입고 있었다.
보통 작업 조끼보다 조금 더 두툼하고 몸에 붙는 핏이었다.

성준  
그렇겠지.  
통신사에서 구간 확인 들어가 봐야 하니…
어?

성준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앞유리 너머 상공을 올려다봤다.

성준   
드론들 떴어요?

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량 뒤쪽 장비 쪽으로 향했다.

성준  
오케이.  
그럼 들어가 보죠.

성준도 몸을 일으키며 차량 문 쪽으로 돌아섰다.

밴에서 띄웠던 드론이 고시원 건물 바로 위에 묵묵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잠시 뒤
추가로 도착한 드론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흩어지며
건물 바깥 골목과 주변 구역까지 천천히 위치를 맞췄다.

더 바깥쪽 상공에도 몇 기가 더 떠올라
낮은 건물들이 이어진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에서 보면
오래된 지붕들과 가느다란 골목들이 반듯한 격자처럼 얽혀 있었다.

그 한가운데,
고시원 건물만 조용히 박혀 있었다.

고시원 바로 위를 내려다보던 드론 화면 아래로 밴의 문이 열렸다.

성준이 먼저 내려와 차량 옆 슬라이드 도어 쪽으로 걸어갔다.

차량 옆 슬라이드 도어가 열렸다.

문 앞에 선 성준은
AR 글래스를 쓴 채 형광 조끼 앞섶을 한 번 내려 정리했다.

보통 작업 조끼보다 조금 두툼한 옷감이 손끝에 잠깐 걸렸다.

성준은 조끼 안쪽으로 오른손을 넣어 가슴 부근을 짧게 한번 짚어 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뺐다.

차량 안에 남아 있던 상현은
장비칸 쪽에서 유틸리티 벨트 하나를 꺼내 성준에게 내밀었다.

성준이 그것을 받아 허리에 둘렀다.

상현의 허리춤에도
평범한 현장 공구들 사이로
낯선 용도의 장비 몇 가지가 조용히 섞여 있었다.

상현은 장비 위치를 한번 가볍게 바로잡고
성준의 뒤를 따라 내릴 준비를 했다.

성준
너는 사무실 쪽 보고,
난 바로 지하 유틸리티실부터 볼게.
통신사에서 왜 망격리 걸었는지
그것부터 확인하고 움직이자.

상현
네.

성준은 몸을 돌려 고시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걷던 중
왼쪽 귀에 이어피스를 눌러 넣었다.

뒤이어 차량에서 내려온 상현은
주황 줄이 들어간 가방을 챙겨 들고 열린 슬라이드 도어를 닫았다.

문이 닫히는 낮은 소리가 골목에 짧게 남았다.

상현도 걸음을 서두르며 왼쪽 귀에 이어피스를 끼웠다.

이내 성준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성준
서쪽 한 팀이요?
음…
아니요, 아직은요.
그래도 북쪽에 한 팀 정도는 대기 걸어 두는 게 좋을 텐데…

네.
알겠습니다.
일단 안에 들어가 보고요

상현
팀 B4 쪽이면 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성준
아까 보니까 멀지 않던데…
참…

고시원 출입구로 가까워질수록
유리문 너머 1층 복도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사무실 앞 복도에는 입주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관리인은 그들과 마주 선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준이 앞서 유리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오가던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관리인
기사님들 오신 지 얼마 안 됐으니
좀 기다려보죠.

성준과 상현이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에 서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이쪽을 돌아봤다.

관리인
어?
아까 기사님들 오셨는데…

성준
안녕하세요.
시에서 나왔습니다.

관리인의 표정이 그제야 누그러졌다.

관리인
아…
저번에 오셨던…
근데 또 왜…

성준
아, 근처에—

그 순간이었다.

천장 조명이 툭 꺼졌다.

복도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관리인, 입주자1, 입주자2
어?

복도 안이 꺼진 것은 분명 순간이었는데
그 다음에 이어져야 할 어둠은 좀 달랐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소리나 옷깃 스치는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바로 곁에 있던 복도와 사람들의 기척이
칼로 잘라낸 것처럼 끊겼다..

그저 까마득하고
비어 있는 어둠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서 한 점,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작은 빛이 있었다.

처음엔 눈의 착각처럼 희미했다.
너무 멀어서 있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작게,
아주 연약하게,
깜빡였다.

막 태어난 별의 숨 같은 빛이었다.
꺼질 듯하다가도 다시 붙고,
붙었다가 또 가늘어졌다.

광막한 어둠 한가운데 그 빛만 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시선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했다.

무언가가
그 점을 찾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처음부터 그것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지워버린 것처럼.

빛은 여전히 멀었다.
손을 뻗어도 닿을 리 없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가만히 보고 있자
조금씩 또렷해지는 듯했다.

어둠은 그대로인데
그 점만 아주 미세하게 살아 움직였다.

작고 외로운 빛.
숨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듯
천천히, 위태롭게,
한 번 더 깜빡였다.

빛은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보고 있을수록 조금씩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진다기보다
그쪽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듯했다.

어둠은 여전히 끝이 없었다.
위인지 아래인지도 알 수 없는데
몸이 아주 느리게 한 점의 빛을 향해 내려가는 감각만 희미하게 이어졌다.

거리가 줄어들자
그 주위에서 희미한 소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귀를 기울일수록
그건 말소리에 가까웠다.

낮고, 흐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들.
처음 듣는 언어인지,
언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들이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입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어둠 사이를 스미듯 떠돌았다.

아이의 목소리
아저씨.

잠든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듯
아주 조심스럽고 작은 숨결 같은 소리였다.
그 부름은 한 점의 빛을 향했다.

빛은 반응하지 않았다.

빛에 가까워질수록
어둠 속을 떠돌던 말소리들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희미하게 번지던 속삭임은
이제 사방에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낮게 웅성거리며
뒤엉키고, 밀치고,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둠 깊은 곳을 휘저으며 입을 열고 있는 듯했다.

가까워질수록
그것들은 더 또렷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나의 언어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소리들이
제각기 다른 결로 쏟아져 나왔다.

서로를 듣지 않는 듯했고
서로에게 맞추지도 않았다.
순서도 없고, 호응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말소리들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각자의 뜻과 사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듯
어둠 속에서 저마다의 문장을 토해냈다.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고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들으라는 듯.
들어야만 한다는 듯.

그 모든 말소리가
한 점의 빛 아래 있는 누군가를 향해 집요하게 밀려들고 있었다.

빛에 가까워질수록
그 주위에 잠겨 있던 형체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검은 수면처럼 출렁이지도 않는 어둠 위에 놓인
작은 배의 윤곽이었다.

외따로 떨어진 고깃배 한 척.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검은 바다 한가운데 길을 잃고 멈춰 선 것처럼
적막 속에 떠 있었다.

그 위에 한 남자가 있었다.

마른 체구였다.
본래 힘은 남아 있는 몸인데도
며칠째 물 한 모금, 밥 한술 제대로 못 댄 사람처럼
살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는 갑판 위에 몸을 낮춘 채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휘청일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손에 쥔 것만은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에는 횃불이 들려 있었다.
오래된 벽화나 유물 속에서나 볼 법한,
지금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은 횃불이었다.

불꽃은 꺼질 기색 없이 선명하게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끝만은 안정을 찾지 못한 듯
가늘고 예민하게 떨렸다.

그 흔들리는 불빛이
남자의 마른 손등과 젖은 듯 검게 가라앉은 갑판 위를
희미하게 핥고 지나갔다.

아이의 목소리
아저씨.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

그러나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시선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자
남자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대신 그는 어둠 속 한 방향에 귀를 세운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뒤엉킨 말소리들 가운데
단 하나를 끝까지 붙잡고 듣는 사람처럼.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리는 거의 새어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쉼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곁에서 누가 불러도 듣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아니면 이미
자기 안쪽의 더 깊은 곳으로 너무 멀리 들어가 버린 사람처럼.

그 중얼거림은 어느새
어둠 속 말소리들 사이에 섞여
또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목소리
아저씨.

그제야
남자의 입술이 멈칫했다.

감겨 있던 눈은 여전히 뜨이지 않았지만
고개가 아주 미세하게 들렸다.
귀가 먼저 반응한 것처럼
그는 어둠 속 어딘가로 조용히 감각을 기울였다.

하지만 곧바로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뒤엉켜 밀려드는 말소리들 사이에
그 목소리도 한때는 스쳐 지나가는 파문처럼 섞여 있었다.

그는 숨조차 죽인 채
그 하나를 붙잡으려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입술이 다시 느리게 움직였다.
누군가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되뇌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그 모습은 이미 너무 깊이 잠겨
바깥과 안쪽의 경계를 제대로 가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아이의 목소리
이제 깨어야 해요.

이번에는
그 말이 흩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말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마침내 하나의 목소리로 또렷하게 박혔다.

남자의 굳어 있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알아들었다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도에 가까운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붙들고 있던 것을
끝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표정에 가까웠다.

감긴 눈 아래로
깊고 조용한 실망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남자
조금만 더…

아이의 목소리
안돼요.
지금 깨어야 해요.

남자
아니… 조금만…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방금까지 아이의 목소리를 향해 열려 있던 감각이 다시 어둠 쪽으로 기울었다.
마치 그 부름을 못 들은 척하려는 사람처럼
그는 조용히 귀의 방향을 돌렸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횃불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
손등의 힘줄이 불빛 아래 가늘게 도드라졌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다시 사방의 말소리들 사이를 더듬기 시작했다.
하나를 놓치면 안 되는 사람처럼,
방금 놓칠 뻔했던 무언가를 기어이 다시 붙잡으려는 사람처럼.

불꽃이 가늘게 떨렸다.

남자의 반응을
그 목소리는 잠시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처음 있는 일도 아닌 것처럼.

하지만 더 머물 시간은 없었다.

여자의 목소리
이제 깨어야 해.

그 순간
남자의 감각이 다시 그쪽으로 붙들렸다.

그의 고개가 미세하게 멈췄다.

다시 어둠 쪽으로 기울어 있던 감각이
천천히 그 목소리 쪽으로 돌아왔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는 분명 알아들었다.

횃불의 불꽃이 가늘게 떨렸다.

여자의 목소리
미안하지만, 이번엔 좀 빨리 나가야 해.

그 말이 닿자
남자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의 손 안에서 버티고 있던 힘이 무너졌다.

안쪽에서 붙들고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풀리는 듯했다.

불꽃은 몇 번 더 불안하게 떨리더니
서서히 기세를 낮췄다.

남자
어…

그때
멀리서 아주 희미하게
다른 소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둠 어딘가가 낮게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곧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
거친 바다의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납게 밀려드는 파도 소리.
바람에 찢기듯 뒤엉키는 물결 소리.
폭풍우 한가운데서 바다가 통째로 들끓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둠 속 말소리들이 먼저 흔들렸다.

뒤엉켜 떠돌던 목소리들이
순간 움찔한 듯 일렁였고,
이내 더 거칠게 서로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붙잡으려는 듯,
돌려세우려는 듯,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은
이제 분명한 감정만은 숨기지 못했다.

성난 목소리,
다급한 목소리,
애원하는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어둠을 휘저었다.

가지 말라는 듯.
아직은 안 된다는 듯.
여기 남으라는 듯.

하지만 폭풍 같은 바다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밀려들었다.

수많은 말소리를 덮어버리듯,
하나씩 짓눌러버리듯,
사방에서 거세게 들이쳤다.

그러자 어둠 속 목소리들도
마지막으로 버티려는 듯 더욱 사납게 요동쳤다.

절박함과 분노와 애원이 한데 뒤엉킨 그 소리는
어느새 세찬 바람 소리와도,
뒤집히는 파도 소리와도 구분되지 않았다.

여자의 목소리
숨 쉬고…

횃불의 불꽃이 마지막으로 가늘게 떨렸다.

남자
어…

그리고 불빛이 꺼졌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순간
배 주위의 어둠 속에서 빛이 솟구쳤다.

한 줄기였다가
곧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마치 캄캄한 허공 속에서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순식간에 자라나듯,
새하얀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 올랐다.

그 빛은 어둠을 밝히기보다
그 안에 숨어 있던 금의 윤곽을 그려내는 것 같았다.
검게 닫혀 있던 공간 곳곳에
가느다란 균열선들이 번쩍이며 새겨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파도가 들이쳤다.

폭풍우 속 바다가 통째로 밀려와
그 금 간 어둠을 정면으로 깨부수듯 쏟아져 내렸다.

빛이 그려낸 선을 따라
어둠은 조각조각 갈라졌다.

검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틈마다 붙들려 있던 목소리들도
일제히 찢겨 나가듯 함께 부서져 흩어졌다.

성난 울음과 절박한 외침,
끝까지 붙잡으려던 수많은 말소리들이
산산이 찢기며 폭풍 속으로 휩쓸려 갔다.

그와 동시에
바다가 배를 거칠게 들어 올렸다.

외따로 떠 있던 작은 고깃배는
거대한 파도등을 따라 한순간 까마득한 높이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곧바로
뒤집히듯 꺾여 내리며
검푸른 물결 아래로 통째로 삼켜졌다.

파도에 휩쓸린 남자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러나 그는 놀라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남자의 얼굴에 남아 있던 것은
끝내 붙들지 못한 것을 마주한 사람의
깊고 무거운 실망뿐이었다.

그 실망은 곧
더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슬픔으로 번졌다.

그의 감긴 눈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물결이 그의 몸을 통째로 삼켰다.

물 아래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파도와 바람과 부서지는 소리로 들끓던 세계가
두꺼운 막 너머로 멀어진 듯했다.

남자의 몸은 검푸른 물속에 힘없이 떠 있었다.
아니, 힘이 빠졌다기보다
더 이상 버티지 않기로 한 사람처럼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흔들렸다.

입과 코끝에서는
참아 두고 있던 숨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작은 공기 방울들이
그의 얼굴 곁과 감긴 눈 위로 스치며 떠올랐다.

하나씩,
또 하나씩.

남자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고요한 물속에 잠겨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
숨…

아주 짧은 머뭇거림.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망설임이라기보다
너무 오래 몸에 밴 현실의 감각이 깊이 새겨져 있어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붙잡는 듯한 순간에 가까웠다.

남자는 결국 숨을 들이마셨다.
곧바로 물이 폐 속으로 밀려들었다.
그의 몸이 즉시 반응했다.

막아내려는 듯
거칠게 뒤틀리고,
본능적으로 버둥거렸다.

의지보다 먼저
몸이 먼저 살려고 했다.

감겨 있던 눈도
그 반응에 끌려 홱 뜨였다.

그러나 그 눈 안에 차오른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깊게 비어 있는 슬픔,
마음보다 더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던
오래된 비애뿐이었다.

뜨인 눈동자 한가운데
검은 동공이 깊게 열려 있었다.

시선은 그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순전한 암흑.

그 짧은 단절 뒤,
이번에는 반대로 시선이 곧게 치솟기 시작했다.

어둠은 길고 좁은 수직의 통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굴속을
한 줄기 탄환처럼 곧장 뚫고 올라가는 감각이었다.

위로,
더 위로,
망설일 틈도 없이 가파르게 솟구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야가 갑자기 터지듯 열렸다.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폭풍 이는 검은 바다 위로 몸을 치솟고 있었다.

입은 하늘을 삼키려는 듯 크게 벌어져 있었다
방금까지 지나온 그 길고 어두운 수직의 공간은
마치 그 거대한 입속 깊은 곳,
뱃속에서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온 통로 같았다.

고래의 벌어진 아가리 밖으로
뱉어지듯 솟아올랐다.

짙은 물비늘과 하얀 포말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고래는 거대한 몸 전체를 활처럼 휘며 검은 폭풍 바다 위로 솟구쳤고,
그 열린 입은 마치
오래 머금고 있던 무언가를 끝내 토해낸 것처럼 보였다.

멈추지 않는 시선은
바다와 고래를 아래로 밀어내며
더 빠르게 하늘 깊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선은 다시 한 점으로 꺾이며
남자의 뜨인 눈동자 밖으로 빠르게 밀려 나왔다.

검은 동공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그 위를 덮고 있던 VR 고글이 드러났다.

낯익은 형태의 풀다이브 고글이었다.
다만 귀 옆 오디오 부위는
바깥 소리를 막아내려는 듯
귓바퀴를 더 깊게 감싸도록 개조되어 있었다.

시선이 조금 더 물러나자
남자의 얼굴 전체가 보였다.

입은 벌어진 채 굳어 있었고
숨은 들어오지 못한 채 목구멍 어디쯤에서 막혀 있는 듯했다.
비명도, 말도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얼굴과 목에는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살갗 아래로 두껍게 부풀어 오른 혈관들이
통증과 공포에 짓눌린 몸의 안쪽 사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고글 측면의 상태등이
짧고 규칙적으로 깜빡였다.
전원이 꺼지기 직전의
무표정한 시스템 신호 같았다.

시선이 더 천천히 물러났다.

남자는 작은 고시원 방 안,
벽에 붙은 좁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늦봄 외출 차림 그대로였다.
후드 스웨터에 편한 바지,
운동화까지 신은 채였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나설 사람처럼.

그러나 몸은 전혀 다른 상태였다.
숨을 쉬지 못한 채 뒤틀렸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팔다리와 몸통은 경직된 긴장 속에 굳어 있었다.

그때
미세한 이상감이 뒤늦게 드러났다.

남자의 몸은 침대에 완전히 닿아 있지 않았다.

아주 조금,
손가락 두세 마디 남짓한 높이만큼
허공에 떠 있었다.

고글의 불빛이 점점 약해지자
몸을 붙들고 있던 긴장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팔다리가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고
떠 있던 몸도 천천히 몇 인치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조심스럽게 놓아주기라도 하듯,
그는 아무 소리 없이 침대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고글의 불빛이 꺼졌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카메라가 더는 움직이지 않는 자리에서 멈춰 서자
그 모습은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 같았다.

잠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적만이
방 안에 얇게 깔려 있었다.

그러다

남자
하…

길고 눌려 있던 숨이
천천히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한 줄기 숨이
멈춰 있던 공기 속으로 길게 퍼졌다.

카메라는 아주 느리게 옆으로 미끄러졌다.

침대 위에 누운 남자의 몸이
프레임 바깥으로 조금씩 밀려나고,
대신 방의 다른 부분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 없는 고시원 방이었다.
방은 이상할 만큼 정돈되어 있었다.
생활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어 있고 단출했다.

벽에 붙은 좁은 침대 하나,
작은 책상과 의자 하나,
그리고 한쪽 아래 놓인 작은 휴지통.

구석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었고,
벽 쪽에는 옷 몇 벌 걸 수 있을 만큼의 좁은 수납장이 붙어 있었다.
고시원 방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것들뿐이었다.

그 안에서 눈에 띄는 개인 물건은 많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VR 구동용으로 보이는 고사양 데스크톱 본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이상하게도 모니터는 없었다.

의자 등받이에는
늦봄용 얇은 점퍼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휴지통 안에는
입구가 단단히 묶인 비닐봉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이틀 전 저녁 식사에서 나온 쓰레기쯤 되는 듯
이미 방 안의 시간과 분리된 채 오래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카메라는 다시 조금 더 미끄러졌다.

침대 옆 바닥,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자리에
휴대전화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충전 케이블이 연결된 채였다.

화면은 꺼지지 않고
타이머를 띄운 채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31시간 44분.

숫자는 멈추지 않고
여전히 천천히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의 희미한 빛만 남긴 채
장면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잠겼다.

고시원 바로 위의 드론은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무 예고도 없이
기체의 불빛이 꺼졌다.

짧은 정적.

드론이 곧게 아래로 꺼져 내렸다.

기체는 고시원 옥상 바닥에 떨어져
얇은 먼지를 흩뜨린 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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